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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띄어쓰기(1)

바다 언덕 2015. 9. 23. 22:10

 

TV뉴스를 보다보면 범죄 사건이 보도될 때, 형사나 경찰들이 피의자를 앞에 놓고 조서를 작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화면에 비춰지는 컴퓨터 모니터에 피의자에게 적용된 법률 용어가 한글맞춤법이

틀렸을 때 발생하는 빨간줄이 쳐진 것을 봤을 것이다.

 

이는 맞춤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서 생긴 빨간줄이다.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등이다.

 

 

그렇다면 법률용어는 왜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

 

근세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비록 해방은 되었지만,

건국 초기의 법령 정비 사업은 일본의 법조문을 그대로 직역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된 정국 불안과 6.25 전쟁 등으로 인하여 우리의 언어와 문자 생활에 어울리는 법조문으로 바뀌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등과 같이 일본식의 띄어쓰기 없는 법률용어의 사용이 그대로 이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법무부에서는 어려운 법률용어나 판결문에 사용된 일본식 표현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어려운 한자어 등을 알기 쉽게 바꾸겠다고 하는데,

아직도 우리는 법률용어표기에 있어서는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때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를 예를 들면서 띄어쓰기의 당위성을 설명하였다.

그런데 우리말과 같은 첨가어(교착어)인 일본은 어떻게 이 불편함을 해소하고 있을까.

 

일본은 한자를 혼용함으로 해서 그 해결책을 찾고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자가 거의 사라졌지만,

일본 신문이나 잡지에서 여전히 한자가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처럼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도 오해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한글도 처음에는 중국 한자나 일본처럼 붙여쓰기를 했지만,

구한말 때에 서재필의 주도로 발행된 독립신문에서부터 띄어쓰기를 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독립신문이 띄어쓰기를 한 이유는 보기 쉽고 자세히 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기 쉽고 자세히 알아보게 한다

이 '띄어쓰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공연을 담당하는 예술의 전당을 보자.

필자의 기억으로도 처음에는 예술의 전당으로 띄어쓰기를 했다고 생각되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법률용어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예술의전당이라고 붙여 쓰고 있다.

예술전당은 한자어이고, ‘는 우리말 조사이다.

그런데 이를 한글로만 예술의전당이라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면

예술(藝術)’행사와 각종 의전(儀典)’ 행사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예술의전당(藝術儀典堂)’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순수 한글만 사용한다면 예술의 전당이라고 띄어쓰기를 하고,

한자를 혼용한다면 藝術殿堂이라고 표기를 해도 오해는 없다.

서울의 예술의전당에 영향을 받았는지 몰라도 지방의 예술회관들도 대부분 따라하고 있다.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의정부예술의전당’, ‘김해문화의전당등등.

   

 

각종 단체나 회사 이름을 등록하려면 띄어쓰기의 규칙이 없다고 하지만,

단체나 회사 이름에는 우리말 조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 한자어 이름을 사용했던 과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옛날식으로 했다면 '예술의전당'은 '예술전당', '생명의전화'는 '생명전화"처럼 단체의 이름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말 조사와 어미가 함께 사용되는 단체의 이름이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그 명칭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말의 특성을 고려하여 띄어쓰기로 표기하면 안 되는 걸까.

생명의전화보다는 생명의 전화가 훨씬 이해도가 빠르다.


문학지 세계의문학’, ‘문학과사상’, ‘창작과비평등도 마찬가지다.

 

 

위의 사진처럼 한자와 조사의 결합이 이루어질 때 해석의 오해는 없다.

하지만 한글만으로 옮겼을 경우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혹여 '세계의문학'이 '世界疑問學'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괜한 걱정일까.

 

최근 판문점 우리측에서 남북의 고위급 회담이 열렸을 때 회담장소를 알리는 화면에

평화의집이라는 한글로 표기된 표지석이 TV화면에 많이 비추어졌다.

이를 평화의 집이라고 조금 띄어쓰기를 하거나 조사 를 조금 작게 썼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때 띄어쓰기를 하지 않음으로 해서 생기는 우스갯소리의 예에 서울시장애인복지관이 등장한 적이 있다.

또 선교 단체인 한국대학생선교회가 있는데, ‘한국 대학 생선 교회라고 오해할 수 있으니,

한국 대학생 선교회라고 띄어쓰기를 하였다면 더 좋지 않을까.

그리고 한글맞춤법 제49항에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하되,

단위별로 띄어쓸 수 있다.'라고 했지만 ​이를 활용하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과거 우리도 국한문 혼용의 시대가 있었다.

국어 교과서나 일간지, 잡지들도 한자혼용을 했다.

하지만 21세기 오늘날에는 거의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더구나 대학의 전문서적도 한글로 쓰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는 오늘날이기에

해석의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도

한글 띄어쓰기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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