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姓名의 두음법칙

바다 언덕 2018. 5. 7. 20:16

흔히 이름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분석한다면 성()과 명()으로 나누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과 명은 별개의 것으로 인식하여 표기법에 맞도록 적어야 한다. 그런데 ’, ‘’, ‘씨 등 몇몇 문중이나 유파는 ’, ‘’, ‘가 아닌 ’, ‘’, ‘로 표기하고 있고, 일부 연예인들은 이름에 있어서도 두음법칙을 적용시키지 않는 것이 개성이나 되는 것처럼 인식하고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이에 일반 대중들도 이런 시류에 편승하여 성명에 있어 자의적인 표기법을 고집하고 있다. 이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에서도 혼란을 주고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며 문제점은 없는지 살펴보자.

 

1. 의 경우

 

앞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씨들은 씨의 한글 성씨 표기는 로 해야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더구나 일부 씨들도 성씨는 원음대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 줄 착각하고 있고, 또 종파에 따라서는 앞으로 논의될 文化 柳씨와 같은 차별성을 보이려 하고 있다. 그리고 씨의 한 유파에서도 가 아닌 로 표기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러면 몇몇 姓氏들이 이처럼 두음법칙을 적용시키지 않고 원음을 쓰게 된 시발점을 추적해 보자.

· 의 한글 표기와 발음

 

李應百<서울대 명예교수>

현재 라고 읽히는 姓氏에는 · · · 가 있는데 · 는 원음이 , ‘· 는 원음이 . 그러나 도 이 경우에는 두음 법칙에 의해 로 소리난다.

그런데 60년대 말이던가. 문교부 國語審議會에서 柳氏 중 특별히 文化 柳氏는 그 宗中의 청원을 받아들여 한글로 쓸 때에는 로 표기할 수 있다고 의결한 일이 있다.

李氏 중에서 全州 李氏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특별히 로 표기하기로 하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 가령 光海君7(1615)에 간행된 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는 이 첫머리에 있는 姓氏(), (), (), · (), (), (), ()’과 같이 일률적으로 으로 표기했다. 그런데 1933한글맞춤법통일안에서는 현재처럼 두음법칙을 적용해 또는 으로 적기로 한 것이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현재 원음대로 로 표기하고, 발음도 그렇게 한다.

文化 柳氏· 庾氏와 구별하고 본이 다른 柳氏와 구분하며, 全州 李氏· 伊氏와 구별하고 본이 다른 李氏와 구분하기 위해 각각 · 로 표기하는 것은 고유 명사 나름대로의 독특한 표기를 허용한 예이지만, 발음은 통례에 따르는 것이 무리가 없다고 본다.

<주간 조선 어문산책’>

 

결국 씨의 경우 가 아닌 로 표기하게 된 것은 文化 柳氏는 다른 일반 柳氏와 다르니 표기를 달리 해 달라는 요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정부 간행물이나 초 · · 고 교과서의 씨 표기는 한글맞춤법에 따라 지속적으로 로 표기되어 왔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인지 1979柳某 교수의 제의에 따라 맞춤법 개정에 따른 시안 부록제일 마지막 조항에 성명의 한글 표기는 이 규정을 따름을 원칙으로 하되, 현행의 음절 범위 안에서 예외를 허용한다.’는 항목을 삽입시켜 명문화를 시도했다.

이 조항은 내용상 文化 柳氏들의 한글 표기 에 대한 허용 규정이었다. 이에 반발한 학자들 중에는 동물학자이면서 우리말 연구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米昇右 씨도 끼어있다. 그는 맞춤법에 예외 조항까지 만들면서까지 를 쓰고 싶다면 한글 씨로 창씨 등록하라고 주장하는 등 여러 학자들의 문제 제기와 검토과정에서 이 예외 조항은 결국 사라지고 말았다. (米昇右, 맞춤법과 校訂實際, 어문각, 1982, pp.71-72 참조)


하지만 文化 柳氏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각종 출판이나 인쇄물에 를 표기해 왔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은 일부 文化 柳氏들의 표기를 보고 의 원음이 니까 로 썼구나 하고 인식, ‘버들 씨는 로 써야 되는 줄 알게 되었고, 덩달아 文化 柳氏가 아닌 씨들도 따라서 사용하게 되었다. 또 이러한 표기 문제 때문에 많은 혼란과 갈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음의 신문 기사에서 알 수 있다.

 

대법원, 한글표시 유권해석

 

앞으로 · ·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의 호적부상 표기는 한글 맞춤법에 따라 각각 · · 로 통일된다.

대법원은 21일 충북도청 민원담당실에 근무하는 이욱환 씨가 문의한 호적부 성명란의 한글과 한자를 병기할 때 · · 씨 성의 한글 기재 방법에 대한 질의에 대해 이같은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리 · · 라씨가 호적부에서 사라지게 됐다(중앙일보. 1996. 12. 22. 21쪽).

 

이 기사가 나가자 몇몇 씨는 신문의 독자란에 국민들의 이름에서까지 법원에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느냐는 항의성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위의 판결 때문인지 학교 현장에서 학생부를 쓰기 위해 학생들에게 주민등록부를 받아보면 씨가 로 적혀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활조사서를 받아보면, 성씨를 라고 써서 제출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곧 우리집에서는 라고 쓴다는 얘긴데, 과연 위에서 언급한 사실을 알고는 있는 건지 궁금하고, 공문서상 주민등록부의 성명과 학생부를 일치시켜야 하는 교사로서는 환경조사서에 적어오는 학생들의 성명 표기에 당황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이는 이름이란 남들이 함부로 들먹거리지 못하는 고유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이러한 현상으로 말미암아 주민등록부 성명과 생활기록부의 성명이 다른 경우도 생기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로 표기하는 사람들의 문중을 조사해 보면 단지 버들 류라는 이유로 표기했을 뿐이라고 한다. 어떤 문중은 文化 柳氏에게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라고 써도 된다는 말을 한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 · · · · · · · 씨 등 로 시작되는 중에서 몇몇 姓氏만 특이하게 표기를 달리해야할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연, 학연에 이은 또 하나의 족벌이기주의 혹은 選民意識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지역 나누고, 학교 나누고, 이젠 같은 성씨에서도 門中에 따라 나누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차라리 이런 문제가 국민들에게 혼란을 준다면 姓氏에서만큼은 북한처럼 두음법칙을 없애는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일반 대중들이 그리 심각함을 느끼지 못하는 언어생활 문제를 국어 관련 학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음의 글을 통해 살펴보자.

 

성씨(姓氏)와 이름의 바른 표기와 독음(讀音)

 

金恩典(서울대 교수)

 

교실에 들어가 학생들의 출결을 점검하느라 호명을 하다 보면, 명렬표에 성명이 잘못 찍혀 나온 것을 보게 된다. 이건 물론 단순한 오식이거나 사무 착오에 의한 것이 아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성명을 그렇게 적어 냈거나, 아니면 사무 직원이 사회적 풍조를 고지식하게 받아들여 그렇게 적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이와 같이 잘못 찍혀 나온 명단을 보면, 국어과 교사 양성 기관인 사범대학에 봉직하여 국록을 먹고사는 필자로서는 국어 수호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감에서 기어코 한 마디 하고야 만다.

류시종(柳始種)’이라 적혀 있긴 하나, 나는 유시종이렇게 부르겠으니 그리 알게.

그러면서도 필자의 가슴 한 구석에서는 제 잘난 맛으로 사는 세상인데 고유명사인 제 성명을 무어라 적든 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런 반문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국법이 지엄한 것이라면, 맞춤법이나 문법의 어법도 역시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유()씨 문중에서는, 자기네 성씨를 묘금도 유()씨나 인월도 유()씨와 구별을 위해 라고 적고도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유명사인 성씨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표기 방식은 희망 사항이지, 우리 언어 습관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두(語頭)에 나오는 로 적고, 또 그렇게 소리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음법칙이라 한다.

이것을 잘 아는 일부 씨 집안에서는, 우리 어법을 존중해서 여전히 로 적고 있다. 따라서 로 적는 이들은 전기 묘금도 유씨나 인월도 유씨와의 구별만을 의도했지, 같은 유씨 가문의 분열은 미처 생각지 못했거나, 혹은 아랑곳하지 않았을 것이다.

과거 자유당 시절에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적을 때, 리승만이라 적어 세인들의 빈축을 샀었다. 같은 전주 이씨 성을 가진 이들도, 리승만 대통령은 씨고, 우리는 씨다, 이렇게 빈정거렸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유관순이 아닌 류관순이 일반화된 감이 있다. 그리고 이런 풍조에 우리도 질쏘냐 하는 듯이 씨 아닌 씨가, ‘씨 아닌 씨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우리 언어 감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간 이북에 통용되고 있는 표기법이 동조하여 로동자, 리발소, 이렇게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문법에 비추어 보면, 성은 하나의 단어요, 이름 역시 하나의 단어로 처리되어 있다. 따라서, 이름의 첫 자가 로 시작될 수 없다. 따라서 시인 李陸史이륙사라 불러서는 안 되고, ‘이육사로 불러야 한다.(후략)

<교육자선교회 회보. 55>

 

어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맞춤법의 규칙을 깨고, 언어생활에 혼란과 불편함을 주고 있는 일부 성씨에 대한 완곡한 항의성 글이라고 볼 수 있다.

 

2. 이름의 경우

 

위의 김은전 교수 글에서 일부 언급되었지만 현행 규정으로는 성과 이름은 각각 독립적인 단어로 규정, 두음법칙을 적용함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이나 매스컴에서도 원칙없는 표기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洪祿基 홍록기, 洪羅姬 홍라희, 金來原 김래원

金龍煥 김용환, 田樂源 전낙원

 

위의 예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일관성이 없다. 윗줄의 이름을 기준으로 아랫줄의 이름을 표기한다면 김룡환, 전락원이라고 써야 한다. ‘金來原김래원으로 쓰는 이유를 물으면 올 래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金龍煥은 왜 김룡환으로 쓰지 않으십니까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이렇게 성과 이름의 표기가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것은 개정된 한글맞춤법이 성과 이름을 띄어썼던 과거와는 달리 성과 이름, 성과 호 등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이는 호칭어, 관직명은 띄어 쓴다.’는 제 48 항과 외자로 된 이름을 성에 붙여 쓸 경우에는 본음대로 적을 수 있다.’(11 항 붙임 2)는 규정에 따라 표기하면서 이런 혼란을 가져온 것이 아닌가 한다.

신립장군, ‘최린’, ‘채륜’, ‘하륜과 같은 표기를 접한 言衆이 외자가 아닌 이름에도 확대 · 적용시키고, 새 맞춤법에 따라 성과 이름을 붙여 쓰다보니 성과 이름이 하나의 형태소처럼 인식되어 일어난 현상이 아닐까한다.

여기서 또다른 추측을 해볼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두음법칙을 적용시키지 않는 한자어를 살펴보면, ‘’, ‘·祿’, ‘등과 같이 일반 대중들이 쉽게 그 원음에 친숙한 글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미디어 매체에 유명인의 이름이 한두 번 오르내린 이름자를 쉽게 흉내내는 경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서양식 이름을 흉내내어 이름을 짓고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고 이를 다시 우리말로 옮길 경우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처음부터 순 한글로 출생 신고를 하면 서양식 이름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으련만, 과거 한자어의 병기를 의무 시 했던 습관이 남아서 무리한 한자어 음역과 그 한자어의 한글 표기가 고민이 되고 있는 것이다.

또 기존의 표기법을 완전히 무시한 연예인들의 예명이 등장하고 일반 대중들도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의 조합으로 독특한 이름이 등장하는 추세이고 보면, 성명 표기에 있어 혼란스러움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따라서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자어 이름의 우리말 표기에 관한 새로운 조항이 한글맞춤법에 삽입되거나, 이름에서는 맞춤법의 규정에 적용받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두어야 더 이상 혼란이 없을 것이다.

위의 몇몇 사례를 통해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한 나라의 맞춤법이 일부의 門中을 위한 예외 규정이 시도되며, 대중성과 객관성이 생명인 법이 특정 집단의 이익에 이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주민등록이나 호적에서의 기록이 통일되었다면 학교생활기록부도 일치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야 혼란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문서의 경우나 서명의 경우에는 나름대로의 표기를 인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언어에는 역사성이 있으므로 시대의 흐름과 변화하는 국민들의 의식에 맞추어 새로운 규정이나 혼란을 주지 않도록 그때그때 필요한 조항의 삽입이 필요하다.

1933한글 맞춤법 통일안1936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한지 50여 년만에 개정을 했지만 아직도 많은 의견 수렴과 수정 · 보완을 필요로 하고 있다.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로 言衆들이 느끼는 혼란을 바로 잡아줘야 할 것이다. 또 몇몇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주장이 언어의 약속을 깨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언어란 하나의 약속이며 그 약속은 사회가 이룩해 놓은 계약인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