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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동차 번호판의 문제

바다 언덕 2016. 2. 19. 13:21

꽤 오래 전 10년도 훨씬 넘은 기억이다.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운전석 유리창이 열리면서 웬 막대기가 나오는 것이었다.

보통은 사람 손이 나오는 것이 정상이지만

흔히 상갓집에 가면 신발 정리하는 기구인 ‘신발 정리 집게’ 같은 것이 불쑥 나와서 계산하고

잔돈을 받아가는 광경을 보고는 ‘이건 뭐지?’하면서 차 번호판을 보았다.


우리나라 차가 아닌 일본차였다.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일본 번호판을 처음 보았다.



위와 같은 식이다.


일본차의 번호판을 본 첫인상은 글씨가 참 못생겼다는 느낌이었다.

흡사 사람이 쓴 손글씨처럼 삐뚤빼뚤한 글자체였는데,

일본 번호판의 글씨체는 왜 깔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후 나의 머릿속에는 일본 자동차 번호판에 대한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나 혼자만의 기준으로 결론을 맺었다.


사람이 쓴 듯한 이 글씨체는 고차원의 의도적인 메커니즘 숨어있음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그 의미를 알아보자.


위의 일본 번호판 사진부터 예를 들어보자.
숫자 ‘9’와 ‘6’이다.




그런데 이 글자를 뒤집어 보자.



뒤집었다.
앞의 숫자가 ‘6’인가, 아니다.
그 모양 때문에 ‘9’를 뒤집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9’와 ‘6’은 모양의 유사성 때문에 뒤집으면 같은 글자가 된다.

그런데 일본 번호판의 글자체는 ‘9’를 뒤집어 ‘6’자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9’는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려오는 선을 사선으로 가지 않고, 수직으로 내려와서 꼬부린 것이고,

‘6’은 처음부터 곧은 사선도 아닌 곡률을 가진 선으로 내려와서 아래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이렇듯 ‘9’와 ‘6’에 고유한 캐릭터를 부여했기 때문에 ‘9’는 항상 ‘9’로 인식되며,

‘6’은 어떤 경우에도 ‘6’으로 인식된다. 이 ‘6,9’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숫자가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 이유는 한국 번호판과 비교해 봄으로써 그 의도를 파악해 보자.

먼저 ‘9’와 ‘6’에 해당하는 우리나라 번호판을 보자.





이 글자를 뒤집어 보자.





뒤집었다.
차이를 느끼는가...거의 똑같다.



(참고 사진)



현재의 자동차 번호판은 2006년 11월부터 보급되었다.
2006년 당시 건설교통부의 보도자료를 보면,
‘시범 번호판’과 ‘확정 번호판’을 비교하면서 보완된 번호판의 장점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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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숫자는 수학적 크기를 배제하고 시각적으로 같은 글씨로 보이도록 착시 조정
  ※ 눈으로 보기엔 숫자크기가 같아  보이지만 수학적으론 전부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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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내용 대로라면,
정밀한 측정도구로 각 숫자를 측정하면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위의 ‘9’와 ‘6’를 뒤집어도 육안으로는 거의 구분하기 어렵다.

여기서 우리나라 번호판 숫자와 일본 번호판의 숫자를 모아서 비교해 보자.


먼저 한국이다.






아래는 일본 번호판이다.





이제부터 한국과 일본의 자동차 번호판의 숫자를 조합을 해보면서 그 차이점을 찾아보자.

그리고 차이점을 통해 일본 번호판의 의도를 파악해 보고, 한국의 번호판에는 문제점이 없는가를 생각해 보자.


먼저 어떤 사람이 나쁜 의도를 갖고 번호판을 반을 가려서 자신의 번호를 감춘다생각해 보자.

또는 CCTV사진 자료 다음과 같이 반만 찍혔다고 생각해 보자.


먼저 한국번호판을 보자.



위의 자료를 보고 숫자를 바로 알 수 있을까? 다만 추측은 가능하다.

추측할 수 있는 숫자로는 ‘3636’, ‘3638’, ‘3838’, ‘3656’, ‘3658’, ‘3856’, ‘3858’, ‘5636’, ‘5638’, ‘5838’, ‘5856’, ‘5858’ 등과 같이 여러 숫자가 후보로 올라간다.


여기서 같은 숫자의 '일본 번호판'을 만들어 보자.


일본 번호판의 숫자는 ‘3856’이라고 쉽게 판별이 된다.


원본의 글자를 보면서 분석해 보자.






일본 번호판은 ‘8’과 ‘6’의 아래 동그라미는 누가 봐도 구분이 되는 모양이다.

‘8’의 아래 원은 길쭉하게 생겼고, ‘6’의 아래 원은 바른 원형 모양을 하였다.

그리고 ‘3’과 ‘5’는 아랫 부분의 반원 곡률이나 모양이 미세하게 다르다.

설사 일본 번호의 ‘3’과 ‘5’를 구별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8’과 ‘6’의 숫자는 쉽게 판독이 된다.


반면에 한국 번호는 금방 판독이 안 된다. ‘8’과 ‘6’의 원형 모양이나 곡률이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숫자의 윗부분을 가지고 비교해 보자.

일본 번호판을 먼저 보자.



한국번호판이다.



일본 번호판을 보면 알 수 있는가.
그렇다. ‘2389’이다.
반면에 한국 번호판의 장점은 ‘3’ 하나밖에 없다.


만약 범죄 수사에서 한국 경찰과 일본 경찰이  겨룬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번호판 인식 프로그램을 개발한다면, 일본 번호판은 뒤집어 달고다녀도,

극히 일부분만 보여도 인식이 가능하다.


2006년 한국 번호판을 유럽식으로 변경한 이유 중의 하나는 판독의 수월성에 있었다.

애초 일본이나 미국식으로 2행으로 된 한국 번호판은 가독력에서 문제가 되었다.




(과거 번호판 사진)


그런데 문제는 두 줄로 된 숫자나 문자는 절대로 한 번에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한 줄로 길게 이어진 유럽식 번호판은 한 번 쓱 훑으면 쉽게 인식되지만,

두 줄로 된 과거의 번호판은 한 번 훑었다고 하더라도 동시에 위 아래의 숫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위아래로 훑으면 되지 않겠냐고 하겠지만 좌우로 형성된 숫자의 집합을 위아래로 훑는다고 인식되는 것은 아니다.


긴 규격으로의 변경에 대해 조사대상자의 84%가 지지하였고,

2005~6년 당시 경찰순찰차에 부착한 ‘시범번호판’이 글씨체만 놓고 본다면,

위에서 언급된 번호판의 각 숫자 대부분이 고유한 캐릭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분적인 유사성이 있는 ‘5’와 ‘3’의 경우, 아랫 부분 곡률의 차이나 ‘9’와 ‘8’, ‘6’의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위 숫자체가 채택되었다면 약간의 수정을 통해 각 숫자의 변별력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글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까지는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왜 그렇게 판단하는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시범번호판’의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 유럽형 번호판 글씨체 표방
- 0,3,5,6,9의 숫자에 트임
- 한글(가,나)의 크기가 숫자 크기와 동일
- 문자 및 번호판의 테두리가 두꺼움
- 전반적으로 조밀
- 서체와 테두리의 굵기 및 색상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무겁고 차가운 느낌
- 글씨체군이 일관성이 없으며 고전적(트임 등)


마지막 붉은색에서 언급된 부문이 전문가 및 국민 여론’에서의 시범 번호판에 대한 단점인데,

이를 보면 전문가조차도 ‘글씨체가 일관성이 없게 디자인된 것에 대해서 불만’ 갖고 있다.

이는 당시 전문가들과 국민들이 숫자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것 그대로 보여준다.


자동차 번호판은 사람들의 신분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서 처음 시작한 자동차 번호판 부착 의무는 관리와 통제에 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자동차 번호판이 단순히 인간의 소유물을 가리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범죄 수사 세금 탈루 방지 등을 위한 목적도 갖고 있다면

장기적인 계획으로 번호판 글씨체라도 충분한 검토를 거쳐 바뀌었으면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